숙련 노동자가 금속 부품을 용접하고 있다. 사진=금속노조숙련 노동자가 금속 부품을 용접하고 있다. 사진=금속노조

1997년, 뉴욕에서 충격적 사건이 벌어졌다. IBM이 만든 슈퍼컴퓨터 딥 블루가 체스 그랜드마스터 가리 카스파로프를 꺾은 것.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6년, 구글의 알파고는 이세돌을 꺾었다. 하지만 카스파로프와 이세돌의 맞은편에 앉은 건 딥 블루와 알파고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체스 말을 무너뜨리지 않고 옮기는 일, 바둑돌을 정확한 목표 지점에 놓는 일은 AI가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처럼 보이지만 노동자 같지는 않은

한 다발의 두려움이 자동차공장을 어슬렁거린다. 현대차 아틀라스, 테슬라 옵티머스가 당장이라도 조립라인 노동을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AI가 바둑과 체스를 제패했으니 자동차 조립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때맞춰 업체들은 휴머노이드가 춤도 추고 백텀블링도 하며 냉장고를 번쩍 들어 옮기는 영상을 시현한다.

하지만 이상하다. 임팩트를 쥐고 볼트·너트를 체결하는 업무, 복잡한 와이어링하네스를 가다듬고 부품을 장착하는 업무, 고개를 숙이고 차량 내부 깊숙이 들어가 조립하는 업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백텀블링, 춤추기는 생산에 필요 없는 동작들이다. 무엇보다 두 발로 걷는 것보다 바퀴를 다는 게 훨씬 자연스러워보인다. 냉장고 옮기는 것도 팔레트를 이용하는 게 훨씬 안정적이다.

확실히 이들 휴머노이드는 ‘사람’처럼 보이긴 하지만 ‘노동자’와는 닮지 않았다. 그럼 이들을 사람처럼 보이게 해야 할 특별한 이유는? 간단하다. 기업의 주가를 띄우기 위해서다. 휴머노이드가 노동자를 대체할 수 있다는 환상만으로도 주주들은 환호하기 때문이다. 몇 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하던 현대차 주가가 아틀라스 영상 공개만으로도 수직 상승하지 않았던가.

수십만년의 학습 데이터는 어디에?

제미나이, 클로드, 챗GPT 등 일상에 깊이 파고든 대규모 언어모델(LLM) AI의 경우 지금까지 출판된 책, 기사, 웹사이트 등 인간이 10만 년에 걸쳐 읽을 분량의 데이터를 학습한 후에야 ‘인간 흉내’를 낼 수 있게 되었다. 피지컬 AI 전문가인 켄 골드버그 UC버클리 교수는 “휴머노이드 훈련 데이터는 1만 시간 치에 불과하다”며 ‘10만 년의 데이터 격차’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아니, 유튜브에 그 엄청난 영상들이 있는데 왜 데이터가 부족할까? 문제는 그 영상들이 2차원 데이터라는 점에 있다. 3차원으로 보정한다 해도 휴머노이드 학습에는 부적절한 것들이다. 그럼 휴머노이드 만드는 기업들은 데이터를 어떻게 구할까?

AI용 데이터 병렬 학습이 가능한 GPU 최대 강자 NVIDIA는 3차원 데이터 일부를 사람을 통해 구한 뒤 각각의 행동을 가상 세계에서 수십, 수백 가지로 응용하는 시뮬레이션 방식을 사용한다. 사실 백텀블링, 춤추기 등의 행동은 시뮬레이션만으로 구현이 가능하다. 위치에너지, 운동에너지 등을 계산해서 입력 데이터를 준 후 시행착오를 거치며 연습(시뮬레이션!)하면 되니까.

하지만 실제 공장에서 인간의 미세한 동작을 따라 하는 건 시뮬레이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테슬라의 경우 수십~수백 명의 인간 노동자를 채용(!)해서 모션 캡쳐 센서를 달고 직접 3차원 데이터를 만들어서 학습에 활용한다. 그렇지만 이런 방식으로 데이터를 만들어서 어느 세월에 10만 년 치를 학습시킨단 말인가.

정의조차 불분명한 피지컬(Physical) AI

피지컬 AI에 대한 수많은 기사가 쏟아지지만, 정작 이 단어에 대해 학계나 업계에서 합의된 정의조차 없다. NVIDIA는 피지컬 AI를 “자율 기계가 실제 물리 세계에서 지각하고, 이해하고, 복잡한 행동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 정의한다. 현실의 휴머노이드는 잘해야 ‘단순 반복’ 업무 투입인데 ‘복잡한 행동 수행’이라니 참으로 모순적이다.

일본 JST/CRDS는 “AI 로봇이 자율적으로 행동·학습·의사결정을 수행하고 이를 지원하는 운영 인프라까지 포함한 종합 시스템”으로 정의한다. 단순히 로봇 본체만이 아니라 운영 인프라까지 포함한다는 점에서 더 설득력 있다.

분명한 것은 사람의 형상을 한 휴머노이드는 피지컬 AI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현실에서는 로봇팔과 코봇(Cobot) 등 생산공장의 자동화 로봇은 물론이고, 자율주행 AI와 소프트웨어정의자동차(SDV), 배달·배송 플랫폼이 활용하는 배차 알고리즘도 피지컬 AI에 들어간다. 수술용 로봇, 재활 로봇, 스마트그리드, 창고 자동화, 배송용 드론도 모두 포함된다.

뭐라고 정의하건 결국 AI를 활용한 소프트웨어로 하드웨어를 움직이는 기술이다. “버그 없는 소프트웨어는 없다”는 것이 IT 업계 정설이다. 게임용 소프트웨어나 생성형 AI의 경우 가상공간에서 소프트웨어가 작동하지만, 피지컬 AI는 물리적 공간에서 인간과 직접 부딪히며 작동한다. 게임 소프트웨어에서 발생하는 버그야 캐릭터 망가지는 수준이지만, 피지컬 AI에 버그가 생기면 사람이 죽고 다친다. 테슬라·웨이모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자율주행 사고들, 제조업·건설업을 제치고 한국 1위 산재 업종으로 떠오른 배달업 모두 피지컬 AI의 산물이다.

독일은 인력난, 일본은 고령화, 한국은 공포 마케팅

일단 현재 자동차산업에서 쟁점이 되는 피지컬 AI인 휴머노이드에 집중해 보기로 한다. 휴머노이드가 노동을 대체할 수 있다는 서사는, 자동차산업을 비롯해 제조업이 발전한 나라에서나 통할 법한 얘기다. 물론 휴머노이드는 제조업만이 아니라 대규모 물류센터 노동에도 투입될 수 있다. 그런데 AI 최대 강국인 미국의 경우 아마존 등에서 휴머노이드 활용이 쟁점이 될 뿐 현대차 아틀라스가 미국 공장부터 투입된다는데 별다른 반향이 없다. 제조업이 발전하지 못한 곳은 휴머노이드가 대체할 제조업 일자리가 많지 않아 사회적 쟁점이 될 기회조차 없다.

그렇다면 결국 전통적인 제조업 강국인 독일, 일본, 한국에서나 이슈로 떠오르는 주제가 휴머노이드다. 독일에서 BMW는 올해 2월 라이프치히 공장에서 휴머노이드 파일럿 프로젝트 시작을 발표했고, 메르세데스-벤츠도 베를린 디지털 팩토리 캠퍼스에서 아폴로 휴머노이드를 시험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에서 논의는 인간 노동 대체가 중심이 아니다. 숙련 인력 부족, 고령화, 위험 작업 대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장 노동자들 역시 휴머노이드 도입 관련 세부 내용에 대한 교섭과 노동자 참여가 보장되는 공동 결정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자본가들 역시 ‘일자리 감축은 예정되어 있지 않다’며 일축한다.

일본 역시 고령화와 인력난이 심각하기에 이를 메우는 수단으로 로봇산업 경쟁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즉 "로봇이 일자리를 빼앗는다"보다 "로봇이 없으면 현장이 안 돌아간다"는 인식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자본가들이 노조 저항을 의식해 좀 더 부드러운 언어를 쓰는 게 아닐까? 안타까운 얘기지만 일본의 노조 운동이 그 정도로 강력하진 않다.

이렇게 보면 피지컬 AI로 일자리 소멸을 얘기하며 공포를 조장하는 한국이 특이한 사례에 속한다. 지난 4월, 산업통상부는 무려 480억의 예산을 들여 ‘제조 암묵지 기반 인공지능 모델 개발’ 사업에 착수했다. 제조 명장들의 암묵지를 디지털 데이터로 만들어 AI 학습을 시킨다는 것이다. 업종별로 명장이 수십만 명 있는 것도 아니고, 명장마다 천차만별로 다른 손기술을 무슨 수로 범주화하고 해석한단 말인가. 무조건 실패가 예정된 사업에 480억이나 되는 세금을 투입하는 이유 역시 동일하다. 피지컬 AI 공포 마케팅에 정부도 자본을 위해 가세하겠다는 것.

1월 7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 현대자동차 부스에서 로봇 아틀라스가 부품 이동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1월 7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 현대자동차 부스에서 로봇 아틀라스가 부품 이동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피지컬 AI가 역설적으로 기여한 것

AI·로봇 연구자였던 한스 모라벡은 1988년에 이렇게 지적했다. 컴퓨터가 지능검사나 체커 같은 성인 수준 과제를 수행하는 것은 비교적 쉬웠지만, 한 살짜리 아이 수준의 지각·이동 능력을 주는 것은 어렵거나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이다. 40년 전에 나온 ‘모라벡의 역설’은 지금도 유효하다. 어려운 논문 오류를 잡는 추론 문제도 해결하지만 엉킨 줄 풀기, 셔츠 접기, 바둑알 놓기 같은 쉬운 일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게 과연 ‘역설(paradox)’일까? 인간이 별 생각 없이 하는 일처럼 보이는 걷기, 균형잡기, 거리감 판단, 표정 읽기 등의 능력은 수억 년에 걸친 진화의 산물이다. 수학 계산이나 규칙 기반 추론은 인류 진화 역사의 최신 단계의 일이었고, 디지털 정보로 표현하는 것이 용이하기에 AI 학습이 가능한 영역이다. 하지만 피지컬 영역은 추상적 추론이 아니라 환경 속에서 몸을 가지고 반응하는 능력이다.

진짜 역설은 이거다. 피지컬 AI 논란 덕에 지금까지 ‘단순 조립’이라고 불렀던 것들이 사실은 ‘고도의 숙련’이었음을 알게 된 것. 자동차 조립, 배선 정리, 부품 장착, 물류 피킹, 위험 회피는 여러 해에 걸친 경험과 감각, 운동의 숙련 결과다. 볼트가 먹는 느낌, 부품이 미세하게 어긋난 감각, 배선이 꺾이는 방향, 작업공간의 위험, 동료의 움직임을 동시에 읽는 일은 당분간 피지컬 AI로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AI는 해고 통지서로 오지 않는다

신기술 도입은 언제나 일자리를 위협해 왔다. 그런데 실제 위기보다 공포 조장이 항상 선행했다. 가정용 세탁기가 보급될 때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일하던 유색인종 여성 가사노동자 대규모 실업이 벌어진다고 했다. 퍼스널 컴퓨터(PC)가 보급될 때에도 비서/타이피스트 등 화이트칼라 고용 충격 우려가 번졌다. 인터넷이 상용화되고 전자상거래가 가능해지자 은행창구/신문/우편/통신/출판/여행사/백화점 업무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비교적 최근 사례라 할 수 있는 키오스크와 서빙 로봇이 음식점 고용을 줄였다는 보고서는 볼 수가 없다. 장하준 교수는 세탁기야말로 가사노동에 매였던 여성을 노동시장에 진출시킨 발명품이라고 평가한다. 물론 분명히 사라지는 일자리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직무를 재배치하고 숙련을 바꾸고 고용 방식이 바뀌는 변화가 핵심이다.

전기차 도입 때도 그랬다. 자본가들은 부품 수가 획기적으로 줄어든다며 조립라인 30~40% 공정이 사라진다며 공포 마케팅을 했다. 하지만 사라진 일자리 대부분은 전기차가 아니라 외주화·합리화·자동화 때문이었다. 자본은 현장을 공포의 도가니로 넣으면 노동자들이 알아서 양보할 거라는 점을 노린다. 이데올로기적으로 무너진 군대를 물리적으로 제압하는 건 쉬운 일이니까.

노동의 설계도를 제시해야

휴머노이드 일자리 대체는 분명 과장된 공포지만, 그렇다고 안심은 금물이다. 전기차 도입 때처럼 실제 노리는 건 외주화·자동화·합리화에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가 더 중요하게 던져야 할 질문은 바로 이거다. “기술 도입의 조건과 규칙을 누가 정하는가”이다.

자본이 일방적으로 설계하면 노동자는 설계당한다. 노동이 개입해야 신기술 도입은 해고와 외주화 도구가 아니라 위험을 줄이고 숙련을 보전하며 생산성의 이익을 나누는 과정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노동은 어떤 조건과 규칙을 요구하며 설계도를 그려야 할까? 필자는 그 초안에 해당하는 ‘신기술 도입 6대 조건과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제시해본다. 현장과 소통하며 활발한 토론이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① 사전 통보와 정보공개 : 어떤 기술을 어디에 왜 도입하는지, 어떤 직무가 없어지거나 바뀌는지, 어떤 데이터를 수집하는지 노동자 및 노동조합에 공개할 것. 노동자 참여와 정보 접근권 확대가 핵심

② 고용 영향 평가 : 기술·설비 도입 이전 해고·전환배치·채용축소·외주화 영향을 함께 평가하고, 결과를 교섭 테이블에 올려야 함. 일자리 축소가 아닌 직무 전환 제안이 기본값이 되도록. (고용 영향 평가는 ‘산업전환 고용안정법’의 기본 원리이기도 함.)

③ 위험성 평가 : 기술·설비 도입으로 인한 노동안전 문제, 특히 로봇 오작동, 협업 동선, 화학반응, 비정상 정비 작업 위험을 사전 시뮬레이션해야 함. (산업안전보건법에 ‘위험성 평가’라는 근거가 이미 제시되어 있음.)

④ 생산성 이익 재분배 : 자동화로 생산성이 오르면 그 일부를 임금, 휴게, 교육 시간, 인력 유지에 배분해야 함. 장시간 노동 억제와 재교육 인프라 강화를 위해서도 필요한 항목

⑤ 전환교육 권리화 : 기업 재량과 호의가 아니라 유급 훈련 시간, 자격 전환, 임금 보전 규칙으로 세워야 함. 기술 변화에 대응하는 재교육·전환교육 인프라 강화 필요

⑥ 외주화 방지 공급망 책임 : 기술·설비 도입한다면서 은근슬쩍 외주화 추진하는 걸 방지하고 원청의 책임 강화를 위한 공급망 실사 원리 도입. 특히 배터리를 다루는 업무의 경우 고위험 공정의 직접고용과 하도급 단계까지의 연대 책임이 핵심.